유쾌한 촌라이프 팜프라
유쾌한 촌라이프 팜프라
  • 권혁년
  • 승인 2019.10.16 2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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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에서 도시 청년들의 농촌정착을 위한 인프라 제공
코부기 집지기를 통해 청년들의 농촌 주택 문제 해결도
함께 먹고, 함께 일하면서 함께 놀기도
텃밭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지역 축제도 기획
팜프라는 농촌과 청년을 연결하는 통역사 역할도

팜프라 촌민들이 팜프라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팜프라제공
팜프라 촌민들이 팜프라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팜프라제공
팜프라 촌민들이 텃밭에 채소를 심고 있다. 팜프라 제공
팜프라 촌민들이 텃밭에 채소를 심고 있다. 팜프라 제공
팜프라 촌민들과 두모마을 이장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팜프라 제공
팜프라 촌민들과 두모마을 이장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팜프라 제공

서울에서 400km를 달려 하동군과 남해군을 잇는 노량대교 도착. 이제 다 왔겠지 하고 네비게이션을 보는 순간 40km를 더 달려야 했다. 달리는 차장 밖으로 바다와 육지가 번갈아 보이고 가끔씩 남해의 특산물인 마늘이 보였다. 그리고 멸치쌈밥 간판도.

그렇게 돌고 돌아 찾아간 곳은 상주면 양아리 양아분교에 자리한 ‘판타지 촌라이프를 위한 청년 마을 팜프라촌’이다. 폐교된 지 오래된 이곳에 ‘기반 없는 청년들을 위한 농업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유지황 대표가 팜프라촌을 열었다.

촌장인 유지황(33) 팜프라 대표는 “땅, 집 같은 기반이 없는 청년들은 농촌에 들어오기 어렵다. 이들이 스스로 농촌에서 살 수 있도록 농사와 집을 짓는 방법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팜프라촌은 지난 2018년 진주에서 출발했다. 농촌에 기반이 없는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유지황 대표가 집단 거주와 이동식 주택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이동식 주택의 이름은 코부기다. 협동을 의미하는 코퍼레이션에 거북이 합성해서 만든 이름다. 다함께 협동해서 거북이처럼 천천히 꼼꼼하게 주택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코부기 주택은 2016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 농촌에 온 청년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인프라가 주택이다라는 점에서 이동식 목조주택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모두 7채의 집을 지었다. 집을 지을 때마다 진화했다. 처음엔 잠만 잘 수 있는 목조 주택이었는데 이제는 화장실과 싱크대까지 갖춘 정말 훌륭한 공간이 됐다. 입소문을 타고 이곳저곳에서 코부기 주택을 지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유대표가 귀띔해 줬다.

“코부기 주택의 강점은 거주자를 위한 친환경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이 집에 살 사람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아니면 젊은 부부인지를 파악해서 그들의 라이프에 맞춘 설계를 하죠. 여기에 좋은 자재를 사용해서 꼼꼼하게 집을 짓는 것은 덤입니다” 유지황 대표의 이야기다.

팜프라촌에 처음 입주를 희망하는 청년들은 24명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입주한 사람들은 11명이다. 입주를 위하는 청년들에게 농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알려주면서 강하게 이곳 생활을 하고 싶은 청년들만이 남았다.

이들은 코부기에서 생활을 하면서 양아분교에 공동 부엌과 화장실을 설치하고 생활한다. 당번을 정해서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밥을 먹고 분교 뒤편에 위치한 198㎡의 텃밭에서 농사도 함께 짓는다. 이들은 한 달에 15만원의 생활비를 의무적으로 내야 한다. 생활비는 각자가 번다. 동네의 일을 도와주고 일당을 받는 경우도 있고 무언가를 만들어서 꾸러미처럼 도시에 판매를 해서 생활비를 내는 사람도 있다.

“도시에서는 회사 생활을 했는데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었고 또 비싼 임대료와 생활비 때문에 삶이 팍팍했어요. 회사 생활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키는 일에만 열중했던 것 같고요. 하지만 여기서는 모두가 함께 하면서 매일 얼굴을 보는데도 웃음이 끊기질 않아요. 그래서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막내 홍수연씨의 말이다.

팜프라 1기의 생활은 사실 시간표가 정해져 있다. 11월 30일이면 일단 정리를 해야 한다. 약 45일 정도가 남았다. 그래서 유지황 대표는 요즘 정리 작업이 한창이다. 농촌에 들어와서 청년들이 정착하는데 필요한 것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팜프라촌의 이야기를 책으로 정리할 계획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곳에 판매를 할 계획이다.

“농촌은 많은 청년들을 원하고 있지만 아직도 청년과 농촌 사이에는 꾀 깊은 골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농촌에 연착륙하면서 정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아직 많은 지자체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느낀점과 작업의 기록을 하나도 빠짐없이 적고 있어요.” 유지황 대표의 말이다.

유대표는 자신은 팜프라촌과 양아리 마을 사람들 사이의 통역사다란 말을 했다. 도시 청년들과 농촌의 어르신을 연결시켜주는 통역사 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서로의 생활이 많이 달랐던 만큼 마을에서 하나로 묶어 나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했다.

팜프라촌은 마을에서 주민들에게 음식 정도는 받았지만 지자체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젊은 청년들이 모였으니까 남해군에서의 관심은 크다. 우선 군과 함께 마을축제를 기획 중에 있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축제의 모습은 어떨지 매우 궁금하다.

팜프라촌이 있는 두모마을은 우리나라 3대 기도사찰인 보리암이 자리 잡은 금산의 남쪽 자락에 위치해 있다.

팜프라 촌민들이 자신들이 만드는 코부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팜프라 제공
팜프라 촌민들이 자신들이 만드는 코부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팜프라 제공
팜프라 촌민들이 코부기를 만들면서 재밌는 포즈를 취했다. 팜프라 제공
팜프라 촌민들이 코부기를 만들면서 재밌는 포즈를 취했다. 팜프라 제공